KO/바가바드 기따 있는 그대로 1.24

Revision as of 04:30, 30 July 2020 by Navakishora Mukunda (talk | contribs) (Bhagavad-gita Compile Form edit)
(diff) ← Older revision | Latest revision (diff) | Newer revision → (diff)
His Divine Grace A.C. Bhaktivedanta Swami Prabhupāda


제24절

산자야 우바짜 sañjaya uvāca
예바묵또 흐리쉬께쇼 evam ukto hṛṣīkeśo
구다께셰나 바라따 guḍākeśena bhārata
세나르요루빠요르마뎨 senayor ubhayor madhye
스타빠이뜨바 라톳따맘 sthāpayitvā rathottamam

동의어

산자야 우바짜: 산자야가 말했다, 에밤: 그래서, 욱타하: 말하다, 흐리쉬께샤하: 주 끄리쉬나, 구다께셰나: 아르주나에 의해, 바라따: 오 바라따의 후손이여, 세나요호: 군대의, 우바요호: 양쪽, 마뎨: 한가운데, 스타빠이뜨바: 배치하다, 라타-웃따맘: 멋진 마차.

번역

산자야가 말했습니다: 오 바라따의 후손이시여, 아르주나로부터 그 말을 듣고서, 주 끄리쉬나께서 그 멋진 마차를 양 군대의 한가운데로 몰았습니다.

주석

이 절에서 아르주나는 구다께샤(Guḍākeśa)로 언급되었다. 구다까는 잠을 의미하는데, 잠을 정복한 사람을 구다께샤라고 부른다. 잠은 무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아르주나는 끄리쉬나와 어울림으로써 잠과 무지를 둘 다 정복했다. 끄리쉬나의 위대한 헌애자로서 그는 단 한 순간도 끄리쉬나를 잊을 수 없었는데, 그것이 바로 헌애자가 지닌 본성이기 때문이다. 자나 깨나 주의 헌애자는 끄리쉬나의 이름, 형상, 특성, 유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끄리쉬나의 헌애자는 그저 계속해서 끄리쉬나를 생각함으로써 잠과 무지 둘 다를 정복할 수 있다. 이것을 바로 끄리쉬나 의식, 즉 사마디(samādhi)라고 부른다. 흐리쉬께샤, 즉 모든 생명체의 감각과 마음의 지휘자로서 끄리쉬나는 마차를 양 군대 한가운데로 몰아달라는 아르주나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따라서 주는 그렇게 한 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