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Prabhupada 1063 - 우리의 모든 활동의 행동과 반작용을 완화시켜주세요: Difference between revi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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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_right|Ni8_my_2jiM|우리의 모든 활동의 행동과 반작용을 완화시켜주세요<br /> de toutes nos actions<br />- Prabhupāda 10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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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현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우리는 여러가지 활동들과 그것들이 맺는 열매를 즐깁니다. 제가 비지니스맨이라고 가정합시다. 지능적으로 아주 열심히 일하며 은행계좌에 어마어마한 잔액을 축적 했습니다. 이제 나는 즐기는 자가 됩니다. 비슷하게, 제가 사업을 어마어마한 투자금으로 시작하지만 성공으로 이끌기를 실패합니다. 돈도 모두 잃었습니다. 고통받는 자가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생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일의 결과를 즐깁니다. 이것을 우리는 karma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현재의 삶에서도 그렇듯, 우리는 여러 가지 활동들과 그것들이 맺는 열매를 즐깁니다. 제가 비즈니스맨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저는 지능적으로 아주 열심히 일하며 은행 계좌에 어마어마한 잔액을 축적합니다. 이제 나는 즐기는 자입니다. 비슷하게, 제가 사업을 어마어마한 투자금으로 시작하지만 성공으로 이끌기를 실패합니다. 돈도 모두 잃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통받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일의 결과를 즐깁니다. 이것을 우리는 karma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īśvara, jīva, prakṛti, 혹은 지대한 주, 생명체, 물질의 본질, 영원한 시간 그리고 우리의 여러가지 활동들, 이것들이 Bhagavad-gītā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다섯 항목들 중, 주, 생명체, 물질의 본질 그리고 시간 이 4개의 항목들은 영원한 한 것 입니다. 현현 혹은 prakṛti는 일시적이라고 할 있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이 물질적 본질의 현현이 사실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Bhagavad-gītā 의 철학, 혹은 Vaiṣṇava 철학에 따르면, 이들은 이 물질적 세상의 현현을 사실이 아니라고 받아드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 현현은 사실이지만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 드립니다. 이것은 구름이 하늘에 자리를 잡으면 장마가 오는 것 같이, 장마 이후, 우리는 들밭이 온갖 녹색의  초목으로 덮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는 즉시 구름들도 사라집니다. 이후 서서히, 모든 초목들이 바싹 바르고 땅도 다시 황량해 집니다. 이와 같이, 물질적 현현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일어납니다 Bhagavad-gītā의 페이지들을 보면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알 수 있습니다. Bhūtvā bhūtvā pralīyate ([[Vanisource:BG 8.19 (1972)|BG 8.19]]). 이 현현은 일정한 기간동안 웅장해졌다가 다시 또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prakṛti의 일입니다. 그렇지만 prakṛti는 영원히 작동 합니다, 그러므로 prakṛti는 영원적 입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닙니다. 왜냐면 크리쉬나께서 인정 했기에, mama prakṛti, "나의 prakṛti”. Apareyam itas tu viddhi me prakṛtiṁ parām ([[Vanisource:BG 7.5 (1972)|BG 7.5]]). Bhinnā prakṛti, bhinnā prakṛti, aparā prakṛti. Cette nature matérielle est une énergie séparée du Seigneur suprême, et les êtres vivants, eux aussi, sont l'énergie du Seigneur Suprême, mais ils ne sont pas séparés de lui. Ils sont en relation éternelle avec lui. Donc, le Seigneur, les êtres vivants, la nature matérielle et le temps sont éternels. Mais le karma, la cinquième notion, n'est pas éternel. Les effets produits par le karma, ou les actions, peuvent être très anciens. Nous souffrons ou nous apprécions les résultats de nos actions depuis un temps immémorial, mais, tout de même, nous pouvons changer le résultat de notre karma, c'est-à-dire de nos actions. Cela dépend de la perfection de notre connaissance. Nous sommes sans aucun doute impliqués dans différentes activités, mais nous ne savons pas à quelles sortes d'activités nous devons nous adonner pour être délivrés des résultats et des conséquences de nos actions. Cela aussi est expliqué dans la Bhagavad-gītā.
그래서, īśvara, jīva, prakṛti, 혹은 최상의 주, 생명체, 물질의 본질, 영속적 시간 그리고 우리의 여러 가지 활동들, 이것들이 Bhagavad-gītā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다섯 가지 항목들 중, 다음 네 가지, 주, 생명체, 물질의 본질 그리고 시간, 이 4개의 항목들은 영원한 한 것입니다. 여기 현현, 혹은 prakṛti의 현현은 일시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가짜가 아닙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이 물질적 본질의 현현이 가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Bhagavad-gītā 의 철학, 혹은 Vaiṣṇava 철학에 따르면, 이들은 이 세상의 현현을 가짜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 현현은 진짜이나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구름이 하늘에 자리를 잡고 그리고 장마철이 시작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장마 , 우리는 들밭이 온갖 녹색의  초목으로 덮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는 즉시 구름들도 사라집니다. 서서히, 서서히, 모든 초목들이 바싹 마르고 땅도 다시 황량해집니다. 이와 같이, 물질적 현현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일어납니다 Bhagavad-gītā를 읽을 때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알 수 있습니다. Bhūtvā bhūtvā pralīyate ([[Vanisource:BG 8.19 (1972)|BG 8.19]]). 이 현현은 일정한 기간 동안 웅장해졌다가 다시 또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prakṛti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prakṛti는 영원히 작동합니다, 그러므로 prakṛti는 영속적입니다. 이것은 가짜가 아닙니다. 왜냐면 주께서 인정했기에, mama prakṛti, "나의 prakṛti." Apareyam itas tu viddhi me prakṛtiṁ parām ([[Vanisource:BG 7.5 (1972)|BG 7.5]]). Bhinnā prakṛti, bhinnā prakṛti, aparā prakṛti. 이 물질적 본질은 최상의 주로부터 분리된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생명체들, 그들도 주의 에너지, 하지만 이들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속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 생명체, 자연, 물질적 본질 그리고 시간, 이들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항목, karma는 영속적이지 않습니다. karma, 혹 활동의 영향은 아주 오래됐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득한 옛날의 활동들에서 오는 결과로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karma 혹은 활동의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식의 완성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행동을 채택해야 우리의 모든 활동에서 오는 행동과 반작용을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Bhagavad-gītā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Quant à la condition d'īśvara, elle est la suprême conscience. La condition d'īśvara, le Seigneur suprême, est la suprême conscience. Les jīvas, les êtres vivants, étant des parties intégrantes du Seigneur suprême, eux aussi, sont conscients. Un être vivant, lui aussi, est conscient. Il est expliqué que l'être vivant est prakṛti, energie, et que la nature matérielle aussi est prakṛti. Mais, entre les deux, une seule prakṛti, les jīvas, est consciente. L'autre prakṛti n'est pas consciente. C'est la différence. Donc, la jīva prakṛti est appelée supérieure, car les jīvas ont une conscience semblable à celle du Seigneur. Le Seigneur est la conscience suprême. On ne peut pas dire d'un jīva, d'un être vivant, qu'il soit la conscience suprême. Non. À aucun des degrés de sa perfection un être vivant ne peut devenir suprêmement conscient. C'est une théorie fallacieuse. Mais l'être vivant est conscient. C'est tout. Il n'est pas suprêmement conscient.
현재, īśvara의 위치는 최상의 의식입니다. īśvara의, 혹은 최상의 주의 위치는 최상의 의식입니다. 그리고 jīva들, 생명체들도 최상의 주의 일부로써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체들도 의식이 있어요. 생명체도 prakṛti라 하고, 에너지 그리고 물질적 본질도 prakṛti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둘 중 한 prakṛti, jīva들, 그들은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prakṛti는 의식이 없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jīva prakṛti는 주같이 의식이 있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가 최상의 의식입니다. jīva, 생명체가 자신도 최상의 의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요. 생명체는 어떤 경지에 오르더라도 결코 최상의 의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론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그는 의식은 있지만 그게 다예요. 그는 최상의 의식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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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test revision as of 17:45, 1 October 2020



660219-20 - Lecture BG Introduction - New York

우리의 현재의 삶에서도 그렇듯, 우리는 여러 가지 활동들과 그것들이 맺는 열매를 즐깁니다. 제가 비즈니스맨이라고 가정합시다. 그리고 저는 지능적으로 아주 열심히 일하며 은행 계좌에 어마어마한 잔액을 축적합니다. 이제 나는 즐기는 자입니다. 비슷하게, 제가 사업을 어마어마한 투자금으로 시작하지만 성공으로 이끌기를 실패합니다. 돈도 모두 잃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고통받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우리의 일의 결과를 즐깁니다. 이것을 우리는 karma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īśvara, jīva, prakṛti, 혹은 최상의 주, 생명체, 물질의 본질, 영속적 시간 그리고 우리의 여러 가지 활동들, 이것들이 Bhagavad-gītā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다섯 가지 항목들 중, 다음 네 가지, 주, 생명체, 물질의 본질 그리고 시간, 이 4개의 항목들은 영원한 한 것입니다. 여기 현현, 혹은 prakṛti의 현현은 일시적이라고 할 수는 있지만, 그러나 이것은 가짜가 아닙니다. 어떤 철학자들은 이 물질적 본질의 현현이 가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Bhagavad-gītā 의 철학, 혹은 Vaiṣṇava 철학에 따르면, 이들은 이 세상의 현현을 가짜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들은 이 현현은 진짜이나 일시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구름이 하늘에 자리를 잡고 그리고 장마철이 시작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장마 후, 우리는 들밭이 온갖 녹색의 초목으로 덮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마가 끝나는 즉시 구름들도 사라집니다. 서서히, 서서히, 모든 초목들이 바싹 마르고 땅도 다시 황량해집니다. 이와 같이, 물질적 현현은 일정한 간격을 가지고 일어납니다 Bhagavad-gītā를 읽을 때 우리는 이것을 이해하고 알 수 있습니다. Bhūtvā bhūtvā pralīyate (BG 8.19). 이 현현은 일정한 기간 동안 웅장해졌다가 다시 또 사라집니다. 이것이 바로 prakṛti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prakṛti는 영원히 작동합니다, 그러므로 prakṛti는 영속적입니다. 이것은 가짜가 아닙니다. 왜냐면 주께서 인정했기에, mama prakṛti, "나의 prakṛti." Apareyam itas tu viddhi me prakṛtiṁ parām (BG 7.5). Bhinnā prakṛti, bhinnā prakṛti, aparā prakṛti. 이 물질적 본질은 최상의 주로부터 분리된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생명체들, 그들도 주의 에너지, 하지만 이들은 분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영속적으로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주, 생명체, 자연, 물질적 본질 그리고 시간, 이들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항목, karma는 영속적이지 않습니다. karma, 혹 활동의 영향은 아주 오래됐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득한 옛날의 활동들에서 오는 결과로 괴로워하거나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karma 혹은 활동의 결과를 바꿀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지식의 완성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의심할 여지없이 여러 가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행동을 채택해야 우리의 모든 활동에서 오는 행동과 반작용을 완화할 수 있을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 또한 Bhagavad-gītā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현재, īśvara의 위치는 최상의 의식입니다. īśvara의, 혹은 최상의 주의 위치는 최상의 의식입니다. 그리고 jīva들, 생명체들도 최상의 주의 일부로써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명체들도 의식이 있어요. 생명체도 prakṛti라 하고, 에너지 그리고 물질적 본질도 prakṛti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둘 중 한 prakṛti, jīva들, 그들은 의식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prakṛti는 의식이 없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그러므로 jīva prakṛti는 주같이 의식이 있기 때문에 우월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가 최상의 의식입니다. jīva, 생명체가 자신도 최상의 의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요. 생명체는 어떤 경지에 오르더라도 결코 최상의 의식이 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이론입니다. 오해의 소지가... 그는 의식은 있지만 그게 다예요. 그는 최상의 의식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