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Prabhupada 1065 - 누구든 먼저 그는 자신의 몸이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Revision as of 10:18, 20 August 2018 by SueK (talk | contribs) (Created page with "<!-- BEGIN CATEGORY LIST --> Category:1080 Korean Pages with Videos Category:Prabhupada 1065 - in all Languages Category:KO-Quotes - 1966 Category:KO-Quotes - Le...")
(diff) ← Older revision | Latest revision (diff) | Newer revision → (diff)


660219-20 - Lecture BG Introduction - New York

현재 이처럼 우리가 물질적으로 오염된 상태에 있을때, 이것을 우리는 조건부의 단계라고 합니다. 조건부의 단계. 그리고 잘못된 자아, 잘못된 의식... 잘못된 의식은 "나는 이 물질적 본질의 생산물이다."라는 인상을 받았을때 나타 납니다. 그것을 잘못된 자아라고 부릅니다. 이 물질적 활동들 전체가 yasyātma-buddhiḥ kuṇape tri-dhātuke (SB 10.84.13). Yasyātma-buddhiḥ kuṇape tri-dhātuke, 신체적 개념의 생각에 빠져있는 자. 이 Bhagavad-gītā 전체가 Arjuna가 자신을 신체적 개념으로 표현했기 때문에 주가 설명하신 것 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을 신체적 개념의 인생 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자유롭고 싶어하는, 해방되고 싶어하는 초월론자들의 서두적 활동 입니다. 그리고 그는 먼저 이 물질적 육체가 자신이 아니라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이 의식, 혹은 물질적 의식... 우리가 이런 물질적 의식으로 부터 자유로워 질 때 우리는 이것을 mukti라고 부릅니다. Mukti, 혹은 해방은 물질적 의식으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뜻 합니다. Śrīmad-Bhāgavata에서도 해방의 뜻을 이렇게 설명 합니다: muktir hitvānyathā rūpaṁ svarūpeṇa vyavasthitiḥ (SB 2.10.6). Svarūpeṇa vyavasthitiḥ. Mukti의 뜻은 이 물질적 세상으로 부터 오염된 의식에서의 해방, 그리고 순수한 의식안에 위치하게 되는 것. 그리고 이 설명 전체, Bhagavad-gītā의 설명의 목표는 읽는이의 순수한 의식을 깨우는 것입니다. 우리는 Bhagavad-gītā의 설명의 마지막 단계에서 크리쉬나가 Arjuna에게 그가 이제 정화된 의식 속에 있는지 물어보는 것을 볼 것 입니다. 그가 정화된 의식안에 있는지. 정화된 의식이란 주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정화된 의식. 그것이 바로 정화된 의식의 요점이고 본질인 것 입니다. 의식은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는 본질적 유형들에 쉽게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주는 최상으로써, 그는 절대 영향을 받지 았습니다. 절대 받지 않아요. 그것이 주와 최상의 차이... 최상의 주 그리고...

지금 이 의식이란... 의식이란 무엇입니까? 이 의식이란 바로 "나는." 나는 무엇인가? 의식이 오염된 상태에서 "나"라는 뜻은 바로 "나는 내가 조망하는 모든 것의 주안" 이것이 순수하지 않은 의식 입니다. 또 "나는 즐기는 자." 이 물질적 세계 전체가 모든 생명체가 "나는 주인 그리고 내가 이 물질적 세상의 창조자다."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가고 있어요. 의식은 두가지 정신적 움직임, 혹은 정신적 구분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창조자,"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나는 즐기는자." 그러나 사실상 최상의 주가 창조자이고, 그가 사실상 즐기는자 입니다. 그리고 생명체들은, 최상의 주의 그저 일부로써, 그는 사실상 창조자나 즐기는자가 아니라, 그는 협력자 입니다. 기계 전체 같이. 기계의 한 파트는 협력자 입니다, 협력자. 혹 만약 우리가 몸의 구조만을 살펴 본다면. 지금 몸에는 손들, 다리들 그리고 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기구들 모두 각자 일합니다, 그러나 이 몸의 모든 일부들은, 이들은 즐기는자가 아닙니다. 위가 즐기는 자입니다. 다리는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입니다. 손은 채집하고, 먹거리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이빨을 씹습니다, 몸의 모든 부분들이 위를 만족시키는데 참여합니다 왜냐면 위는 몸의 조직 속에 근본적인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위에게 줘야 합니다. Prāṇopahārāc ca yathendriyāṇām (SB 4.31.14). 마치 뿌리에 물을 주면 나무가 녹색으로 잘자라는 것과 같이. 혹 당신이 건강해 질 수 있듯이... 몸의 모든 부분들- 손들, 다리들, 눈들, 귀들, 그리고 손가락들- 몸의 부분들이 위와 협조하면 모두 건강한 상태로 유지됩니다. 이와 같이, 최상의 생명, 주, 그가 즐기는 자 입니다. 그가 즐기는 자이고 창조자 입니다. 그리고 우리, 그러니까 제말은, 하위의 생명체들, 최상의 주의 에너지의 생산물들, 우리는 그냥 그와 협조해야 합니다. 협조가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또 다른 예, 맛있는 음식이 손가락을 통해 전달 됩니다. 만약 이때 손가락이 "왜 내가 이것을 위에게 줘야되? 우리가 즐기자." 생각한다면, 그것은 실수이죠. 손가락은 즐기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만약 손가락이 일정한 먹거리의 즐거움의 열매를 보고 싶다면, 손가락은 먼저 이것을 위에게 전달해야 합니다.